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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노르웨이 Norway 오슬로 Oslo 여행기(1)


오슬로 여행입니다.

여기저기 많이 다녀 봤지만..


아~정말 여기 살고 싶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과 자연이 잘 어울러져 있는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곳이 오슬로입니다.


다시한번 가고싶은 곳...


요즘 코로나로 유럽의 미개함이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런것을 떠나서 정말 아름다운곳 하면 노르웨이 오슬로가 가장먼저 생각 납니다.


이곳에서 돌아다녔던 곳과 갔었던 곳을 간단하게 설명 드릴게요.


우선 스웨덴을 거쳐 버스를 타고 노르웨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오슬로에 숙소를 정하고 짐을 풀고~~

와~~ 하늘이 정말 이쁘 더군요.


숙소는 노르웨에 왕궁 근처.

노르웨이 왕궁은 문재인 대통령이 오슬로포럼에서 연설 하신 곳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노르웨이 궁전에서 한컷]

근위병과 함께



[가족사진도 한컷]

노르웨이 왕궁에서 국회의사당으로 내려 오면 오슬로 시청이 있습니다.

그 골목이 가장 번화가이며, 관광객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시청골목]




시청 골목을 내려오다 보면 주변에 동상들, 분수 등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보는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


거리와 하늘이 너무 잘 어울립니다.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앞에서 한컷


오슬로 시청 앞에서...


오슬로 시청을 지나면 선착장이 나오는데...

거기서 바다를 바라보는 뷰가 끝내 주는것 같습니다


[선착장에서 한컷]





거기에서 티켓팅을하고 배를타고 


Viking ship Museum


The Norwegian Museum of Cultural History


 The Fram Museum


Norwegian Maritime Museum 등을 관광합니다.


아주 볼것이 많은 박물관은 아니지만, 지나치는 자연 경관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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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셋째주 월요일(5월18일) 성년의 날, 성년(성인)이 되면 할 수 있는것, 성년의날 선물은?




5월 셋째주 월요일은 성년의 날입니다.

그러니깐... 올해 만 19살이 되는 젊은이들에게 성인으로서 자각과 사회인으로서의 책무를 일깨워 주고,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격려를 해주기 위한 날입니다.


참.. 감회가 새롭습니다.

언제적 일인가 싶기도 하고....


성년의 기준은 몇번 바뀌었습니다.


2013년 7월 1일 전에는 20세 이상이었으며, 2013년 7월 1일 이후에는 만 19세 이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뀐 이유는 청소년보호법과 선거법의 나이를 맞추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사실 건국 1년전 ~ 1960년까지는 21세가 되야 성년으로 인정 받았습니다.

사회가 변하고 정보활동이 원활 해 지고, 발육도 좋아짐에 따라 성년의 기준이 점점 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그럼 성년이 되면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을 까요?


1. 계약 및 경제 활동을 스스로 할 수 있다.

핸드폰 구매, 자동차 계약, 부동산 계약, 소송참여, 부모 동의없이 결혼 등


2. 술, 담배를 살 수 있고, 유흥업소에 출입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것은 가능하면 하지 마세요.^^


3. 영화, 게임 관련 성년은 18세 이상이면서 고등학교에 재학하지 않는 자,

고등학생은 18세 이상이 되어도 졸업하거나 자퇴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투표까지 할 수 있는데 청불영화나 PC방, 오락실 출입은 안됩니다.

조금 어폐가 있네요.


3. 부모님 동의 없이도 경제 활동이 가능하다.


4. 투표권이 생겨 투표를 할 수 있다.

단. 국회위원은 만25세 이상, 대통령은 국내에 5년이상 거주한 만 40세 이상 국민이면 가능


5. 부모동의서 없이 모든 서류 발급 가능하다.


6. 법적 책임을 져야 하다.

우리나라는 10시 미만의 소년범은 법젹 규제를 하지 않으며, 14시 미만은 보호처분이 가능하고 형서처벌은 불가능 합니다.

그리고 19세 미만은 형사처벌은 받으나, 소년원에 따로 수감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19세 이상은 성인과 동일한 형사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단, 전과기록은 나이에 상관없이 남게 되어 있으니 죄 짓고 살지 마세요.


그럼 성년의 날 선물은 뭐가 좋을까요?


보통 장미, 향수, 키스 이 세가지 선물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장미 - 꽃말(열정, 사랑)으로 성인이 된 젊은이에게 무한한 사랑과 열정이 계속 되길 바란다는 의미

보통 20송이 장미를 선물 합니다.


향수 - 다른사람에게 아름다운 자신의 향기를 풍기는 좋은사람이 되라는 뜻.


키스 - 책임감 있는 사랑을 하라는 뜻


그리고 평소 갖고 싶어하는 것들도 많이 한다고 하네요.


세계 성년의 날은?


미국 - 매년 5월 셋째주 월요일 (18세)


일본 - 매년 1월 둘째 월요일(20세, 국왕, 왕세자, 왕세손은 18세.. 뭐 이런???)


독일 - 성년의 날 없음(만 20세)


이렇게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성년이 되는 젊은이에게 격려의 말씀을 전해주시고, 대한민국이 똑바로 갈수 있도록 많은 지도 부탁 드려요.


대한민국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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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폴란드 Poland 유채꽃으로 뭘 할까? 카놀라유??

글을 쓰고 있는 이때는 2020년 5월 7일입니다.

코로나가 한참 창궐하고 있는 시점이죠~~


한참 놀러 다닐땐데 못가니 많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출퇴근 길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광경이 있습니다.


제목에서 이야기 한데로 폴란드는 유채꽃이 엄청 많습니다.

유럽은 여름에 낮이 길어 일조량이 굉장히 많습니다.



한 여름에는 아침 4시부터 해가 뜨기 시작해서 저녁 10시정도 되야 해가 질때도 있습니다.

해가 엄청 길죠~~


그래서 가끔은 해가 떠 있는것을 보고 퇴근시간을 놓치기도 합니다.


하여튼... 일조량이 많아 밭에서 2모작을 대부분 합니다.


봄에는 유채꽃을 키우고, 그 다음에는 옥수수를 키워서 수확을 하죠~~


도대체 유채꽃으로 뭘 할까??하고 궁금해서 찾아 봤는데..


유채꽃을 키워서 그 씨앗으로 카놀라유를 만들더군요...

정말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유채꽃 씨앗에서 추출한 기름으로 바이오 연료도 만든 답니다.

참 다양하게 사용하는데요..


그런 유채꽃을 키울때는 바로 장관을 연출합니다.


제주도에도 많이 재배 한다고 하지만 여기는 더 많은 듯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유채꽃 밭을 보면서 일을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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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담은 책


출처 : https://univ20.com/


참 많은 생각을 한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감정이 이입되서 많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이토록 가슴아프게 책을 읽은적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꼭 한번 읽어보세요.




작가 한강은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그 상처를 다시 응시하고 애도하기로 합니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소년 동호를 중심으로,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았어요.

 

작가는 소설을 쓰며 “벌 받는 기분으로 책상에 앉아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비슷한 심정으로 책장을 넘겨야 할 겁니다. 곪아 썩어가는 상처를 다시 들여다볼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겠지만, 함께 기억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1. 소년,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다

1장은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소년, 동호의 이야기입니다. 한집에 사는 동호와 정대는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예요. (정대, 정미 남매는 동호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습니다) 그 일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늘어지게 낮잠을 잔 뒤 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을 겁니다.

 

소년들은 잘 몰랐습니다. 왜 군인들이 사람들을 때리고 죽이는지. 그저 정미 누나가 없어져서, 누나를 찾으러 거리로 나와 있었을 뿐이에요. 어른들이 데모하는데 근처는 가지도 말라고, 간밤에도 역에서 총을 쏴서 사람이 죽었다고 했지만, 자신들이 죽게 될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뭘 했다고요.

 

 

그런데 정대가 죽었습니다. 갑자기 울린 총소리에 놀라 거리가 아수라장이 되었을 때. 동호는 정신없이 도망가다 정대 손을 놓쳤어요. 총알이 정대의 옆구리를 내려쳤고, 정대는 헝겁 인형처럼 고꾸라졌습니다. 그런 친구를 뒤로하고 동호는 도망쳤습니다. 겁에 질려서 저격수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어디일까 만을 생각하며 집으로 갔어요.

 

집에 도착해 불 꺼진 정대 방을 보자, 소년은 그제야 총에 맞아 죽은 친구를 떠올립니다. 동호는 복받쳐 올라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해요.

 

 


“지금 정미 누나가 갑자기 대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달려나가 무릎을 꿇을 텐데. 같이 도청 앞으로 가서 정대를 찾자고 할 텐데. 그러고도 네가 친구냐.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 정미 누나가 때리는 대로 얻어맞을 텐데. 얻어맞으면서 용서를 빌 텐데.”

『소년이 온다』 36p


 

 

정대가 죽던 날. 어린 소년의 영혼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소년은 친구를 찾으러, 시신들이 모여 있는 도청으로 갑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그곳에 남아 잔일을 돕게 됐어요.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처럼 친구나 가족을 찾으러 온 사람들에게, 덮어둔 천을 열어 죽은 몸을 보여주고, 신원을 확인하는 일이에요.

 

시체 냄새가 가득한 도청에서, 오열하는 유족들을 보며 동호는 다짐합니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2. “누가 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2장의 화자는 죽은 정대의 영혼입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피를 많이 흘려 습자지 같이 얇고 투명해진 자신의 얼굴이 보였답니다. 썩어가는 수많은 몸들 사이에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니 무서웠지만, 정대는 어디로도 갈 수 없었어요. 눈을 감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죠. 혼이란 그저 썩어가는 자신의 몸뚱아리 주변을 맴돌 수 밖에 없다는 걸 정대는 깨닫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죽인 사람의 꿈에 나타나고 싶다고.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자신의 눈을 봤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혼엔 힘이 없죠. 키가 자라고 싶었던, 팔굽혀펴기를 마흔 번 연달아 하고 싶었던, 언젠간 여자를 안아보고 싶었던, 중학교 3학년 꼬마 정대의 삶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습니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중략)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듯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을 생각해.”

『소년이 온다』 57p


3. “오늘 남는 사람들은 정말 다 죽어요?”

다시 동호가 있는 도청으로 돌아옵시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계엄군이 오늘 밤에 도청으로 들어올 것이고, 남은 사람들을 다 죽일 거래요. 형들은 각오가 된 사람만 남고 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동호는 가지 않았어요. 엄마가 도청까지 와서 여기 있다간 죽는다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끝까지 남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죽은 정대를 위해서? 어쩌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아님 죽는 게 두렵지 않다는 초연한 확신으로? 아마 아닐 겁니다. 창문 틈 아래 웅크려 앉아 배가 고프다고 말하던 아이가, 회의실에서 남은 카스텔라를 얼른 가져와 먹어도 되냐고 묻던 아이가, 죽음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런 선택을 했겠어요.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소년이 온다』 114p


 

 

그들이 무슨 마음으로 도청에 남았건, 계엄군은 예정대로 도청으로 들어왔고 시민군은 철저하게 패배했습니다. 총을 들고 경계하던 형들은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어요.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대요. 진압 과정에서 군인들은 항복하는 아이들까지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호는 죽었습니다.

 


4. 그날 이후, “살아남았다는 치욕과 매일 싸웁니다”

소설의 3장부터는 동호가 죽고 시민군이 계엄군에게 패배한 이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그들은 ‘극렬분자’, ‘빨갱이’라는 딱지를 달고 연행되어 끔찍한 고문을 받아요.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년이 온다』 167p

 

“내가 어떻게 대답하든 소총의 개머리판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습니다. 본능적으로 나는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벽 쪽으로 뒷걸음질쳤습니다. 내가 쓰러지면 그들은 등과 허리를 밟았습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아 내가 몸을 뒤집으면 군화로 정강이를 짓이겼습니다.”

『소년이 온다』 106p


 

 

끔찍한 고문을 받던 이들은 이듬해 성탄절 특사로 석방됩니다.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고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십 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고통은 끝나긴 커녕 선명해집니다. 자신을 괴롭힌 이들을 죽을 때 꼭 데려 가겠다며 분노하는 사람, 트라우마에 미쳐서 손목을 여섯 번이나 그은 사람, 살아남았다는 것에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지옥에 살고 있어요. 그들에게 광주는 지나간 일이 아닌 겁니다. 비록 더 이상 누구도 그들을 위해 눈물 흘리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소년이 온다』 126p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소년이 온다』 135p


5. 내 친구, 우리 형, 우리 엄마의 이야기

사실 5월 광주에 대한 소설이라면 이미 나올 만큼 나와 있습니다. 『소년이 온다』가 특별한 건 등장인물들이 마치 내 가족, 친구인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사건을 고발하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상처를 안고 사는 개개인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서술 방식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독백인 6장을 읽을 땐, 저도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마지막 날에 내가 너를 찾아갔을 적에, 네가 그리 순하게 저녁에 들어갈라요, 말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으까이. 나는 안심을 하고 집에 가서 느이 아부지한테 그랬어야.
여섯시에 문 잠그고 집에 온다요. 다 같이 저녁 묵자고 약속했소.
그란디 일곱시가 되도록 네가 안 들어온게. 그렇게 너를 영영 잃어버렸다이.”

『소년이 온다』 185p


 

어떤 독자들이 『소년이 온다』를 읽었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한강 작가는 “젊은 독자, 어린 독자들이 많이 읽어주면 좋겠다”고 답했습니다. 광주가 이제 점점 언급이 안 되고 있고, 교과서에도 자세한 정황이 나오지 않고 교육이 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모두가 모르게 된다는 거에요.

 

 

얼마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발포 명령을 부인하며 “사실 ‘광주사태’하고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잊은 사이, 광주는 여러 번 되태어나 살해당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도 오랫동안 광주를 잊고 지냈습니다. 여러 번 책을 덮고 눈물을 닦아야 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이제라도 읽게 되어, 기억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소년이 온다』 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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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5·18 광주 민주화운동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란?



5·18 민주화운동, 또는 광주 민주화운동은 넓게 보면 1979년 12·12 군사반란 직후부터, 좁게 보면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전두환 등 신군부 쿠데타세력이 무고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인 학살 범죄가 일어나기도 했던, 시민과 계엄군 모두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건이다. 미디어에 따라 광주민중항쟁, 광주민주항쟁, 광주학살, 광주사태 등으로 부르며, 보통 일어난 날짜를 줄여서 5·18로 부르기도 한다. 대한민국 초•중•고 교과서에서는 대부분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적고 있다.


1979년12·12 군사반란이 일어나자 전두환을 중심으로 구성된 신군부가 군부를 장악하였고, 서울의 봄으로 민주화 열기가 거세지자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일으킨다.

12·12 군사반란이 만든 계엄령과 대학교들의 겨울방학, 연말이라는 점이 맞물려 이에 대한 대처는 뒤늦게 나타났으며, 대학들이 개학을 맞이한 3월 이후 안개정국에 대한 사항이 알려졌고, 1980년 4월부터 이를 규탄하기 위한 집회가 끊이지 않았으며,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전라남도 광주시[18]에서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전두환의 군사 독재에 맞서 일어난 시위가 진압군과 격한 대립을 벌인 끝에 광주에 진입하려는 진압군과 광주시민들의 총격전으로 발전했고, 결국 진압되지만 수많은 사상자[19]가 발생하였으며, 군사정권의 인권 탄압과 민간인 살해 사례로서 많이 알려진다. 이 정도로 설명하기에는 당시 상황과 이후 여파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 일련의 사태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의 일부로서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시민들의 희생으로 의의가 다시 떠올랐다.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한 군부의 행동을 묵인, 사실상 전두환 군사정권의 편에 섰다고 여겨진 미국에 실망한 운동권과 지식층 중 일부가 반미주의로 돌아서는 계기를 마련했고, NLPDR과 민중민주주의의 성장에도 알게 모르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https://namu.wiki/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판에 넘겨져 금고형 이상을 받아 대통령이라는 예우를 받을 수 없는 전두환은 아직도 한국 권력의 중심에 서서 예우를 받고 있음이 너무나도 화가 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5.18) 광주는... 어... 그거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그 폭동이야. 그런데 그러니까 계엄군이기 때문에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이딴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자기만의 권력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이 반듯이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또한 아직도 "광주사태"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데 

좀 많이 듣고 배웠으면 합니다.



1년 전쯤 책읽기 모임을 다녔었는데... 거기서 어떤 분이 광주사태라는 표현을 써서 제가 정말 잠깐 화를 냈던 기억도 납니다.


역사는 반듯이 바로잡고 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한번 한국의 민주화에 앞장선 광주시민 분들에게 감사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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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Sweden 예테보리 Göteborg 여행기


2019년 7월 6일 유럽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북유럽 여행을 떠났습니다.


첫 여행지는 덴마크 -> 스웨덴 -> 노르웨이를 거치는 대장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일이 바빠서 와이프와 아이들만 먼저 덴마크로 출발하고 저는 스웨덴에서 합류 하였는데...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제가 없는 여행은 항상 문제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저희 가족들은 꼭 저를 데리고 다닙니다.ㅋㅋ

앞으로도 계속 데리고 다녀줘야 할텐데, 나이 먹으면 떼놓고 다닐까봐 살짝 걱정이 됩니다.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Stockholm)을 가야 했지만, 덴마크에서 버스로 노르웨이까지 올라가는 여정이라서 중간에 들릴 수가 없었습니다.


버스는 Flix버스가 있는데 이 버스는 주요도시, 국가간 운영되는 버스입니다.

이 버스가 저렴하고 많이 쉬지도 않고 깨끗해서 이용하기 편합니다.

"Flix bus"로 검색해서 어플 다운 받으시고 이용하면 매우 편합니다.


스웨덴 예테보리(Göteborg) 또는 고테보리라고도 하는데

여기는 한국의 "부산"같은 동네로 생각하면 됩니다.


항구를 끼고 있는 도시여서 너무 아름답고 이쁜 광경이 많이 펼쳐 집니다.


첫번째 여행지는 예테보리 미술관입니다.

스웨덴에서 3번째로 큰 미술관으로 북유럽 현대미술, 고전미술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굉장히 쾌적하고 볼거리가 많습니다.


미술적으로 문외한이 저도 그냥 보기 너무 좋은 곳이었습니다.


현대미술관의 조각상


뒤쪽을 배경으로 찍었지만 너무 큰 머리로 모두 가려진 상태


예테보리의 작가들에 의해서 그려진 그림 또는 예술품으로

알 수 있는 그림은 없었습니다.


그냥 아빠와 딸(배경은 예술)



근대 조각상




이 그림을 보면 왠지 "기생충"에 나오는 그림이 생각납니다.


예술적인 뭔가 있는듯한~~



여러가지 예술 작품이 많지만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빙 둘러 구경하고 빠져 나왔는데..


그래도 머리속에 한자리로 남아 있네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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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폴란드Poland 스키여행(Szczyrk Mountain Resort)


2019년 사진첩을 보니 참 아쉬운게 하나 있습니다.



스키 마지막 시즌에 이놈의 코로나로 인해서 스키장이 조기 폐장이 되었네요.

사실 2019년 겨울은 너무 따뜻해서 개장도 늦은데다가 코로나로 폐장도 너무 빨랐습니다.


스키를 타러 열심히 간다고 갔는데 겨우 2번 가고 나니 스키 코스가 문을 닫았네요.


일전에 갔다 온데는 Szczyrk Mountain Resort 입니다.


스키장 코스가..... 리프트타고 올라가는데만 30분 정도 걸리네요.

그리고 너무 좋은것은...

스키 인구가 많이 없어서 기다리지 않고 리프트를 바로바로 탈 수 있다는것....


또 장비가 없는 우리집은 밑에 가게에서 모든것을 리스해서 탈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습니다.

옷만 입고 가면 스키는 바로 탈 수 있습니다.


산 정상에서 보면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에 한번 더 놀라고 좋았네요.


여기 올라온 사진은 2019년 01월 19일에 다녀온 사진이며, 나중에 기회가 되면 2020년 1월 광경을 한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스키코스가 정말 예술입니다.

여긴 곤돌라로 되어 있어서 곤돌라 이용권을 끊어야 됩니다.

곤돌라 이용권이 3시간에 3만원 정도 되는듯 합니다.


3시간이면,,,,,, 흠.... 5번 정도 탈 수 있어요.

스키 코스 예술입니다.


꼭 한번 갔다 오시길 강추~~~~~~~~~~


그리고 몸풀기 연습용 코스 입니다.

연습용 코스는 50m 정도 되는 코스 인데 18회 이용하는데 20PLN(6000원 정도)

했습니다.


근데 코스가 좀 짧습니다.


여긴 애들이 연습하고 적응하는 곳입니다.



딸은 생전 처음 스키를 타 봤습니다

레슨을 받았는데....


레슨 한시간만에 혼자 타더라구요.


애들이 확실히 배우는건 빠른것 같습니다.


나이먹으면 쉽게 배워지지가 않아요..


자세가 좀 나오죠


아들은 한국에서 조금 타고 왔다고 금방 다시 적응하고 능숙하게 탑니다.

몸으로 배운것은 쉽게 잊혀지지가 않는가 봅니다.




어때요? 저는 자세가 나오는 편인가요?

저도 잘 타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좀 타 봤다고....


군인 스타일입니다.


우리집 사모님은 1시간 레슨 받더니...

한마디 합니다.



"내 생애 스키는 없다!!!!!!!!!!!!!!!!!!!"


헐... 빠른포기.. 이게 좋은건지. 어떤건지 모르겠습니다.



참 즐겁게 스키를 타고 왔습니다.


빨리 겨울이 다시 오면 좋겠네요.


애들에게 정말 좋은 기회가 되는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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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참 기념일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참~~~ 난감한... 어떻게 해야 할지 항상 고민되는 교사의날(스승의날)이 있습니다.


교사의 날은 세종대왕 탄생일에 맞춰 지정되었습니다.


다른 많은 나라들도 스승의 날이 있는데 유네스코가 지정한 매년 10월 5일을 세계 교사의 날(World Teachers' Day)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사의 날에 일부 교사들의 촌지 수수로 인해 귀찮아 지고, 번거러워 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 학교에서는 재량휴일로 지정하여 휴교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 은혜를 돈으로 표현하는 일부 독선적인 부모와 그것을 또 악의적인 마음으로 받는 선생이 있어 은혜와 노고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날 조차 마음 놓고 누리지 못하는 선생님들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스승의 날을 "교육의 날"로 바꿀 것을 청원하는 글도 올라왔으며, 참여인원이 4,246명이 청원을 할 만큼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청원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가기념일은 47개입니다.
많기는 하지만 취지를 살펴보면 나름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각종 기념일을 주관하는 정부부처가 정해져 있고 관련 분야의 의미를 해마다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승의 날은 특정 직종의 사람을 지칭하는 듯 해서 불편한 감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보건의 날’이지 의사의 날이 아닙니다.
‘과학의 날’이지 과학자의 날이 아닙니다.
‘법의 날’이지 판사의 날이 아닙니다.
‘철도의 날’이지 기관사의 날이 아닙니다.
‘체육의 날’이지 운동선수의 날이 아닙니다.
그런데 ‘교육의 날’ 대신 스승의 날이 있습니다.
교육부에서 해마다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유공교원 표창을 하고 있지만 교사로 살아가며 스승의 날이 부담스럽습니다.
종이카네이션은 되고 생화는 안 되고, 이마저도 학생대표가 주는 카네이션만 된다는 식의 지침도 어색하기만 합니다.
오죽하면 스승의 날을 폐지해 달라는 청원까지 있었습니다.
스승의 날을 정 못 없애겠으면 차라리 '교육의 날'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교육의 3주체는 교사, 학생, 학부모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스승의 날을 교육의 날로 바꾸어서 학교구성원 모두가 교육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교육의 날을 언제로 정하는지는 충분히 또 논의를 해가면 됩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볼 수도 있습니다.
1887221, 고종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배재학당에 현판을 전달했습니다.
어찌 됐든 정부가 학교를 최초로 인정한 날이니 221일로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시기는 종업식과 졸업식을 마치고 한 해를 돌아보기도 하고, 새 학년을 새 학기를 앞두고 학교구성원이 새로운 다짐을 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교육의 날을 언제로 정할지는 앞으로 더 활발한 논의를 해가기로 하고, 시대 변화에 맞추어 스승의 날을 교육의 날로 바꿀 것을 청원합니다.


그리고 이런 글도 있네요.

선생님과 김영란법을 Q&A로 풀어 놓은 내용인데요.

참 왜 이렇게 돼 가는지... 고민 스러울 따름입니다.


Q1> 어떤 선생님들이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가?
··고등학교 각급 학교의 장과 교직원, 학교법인 임직원이 대상이다, 유치원 및 기간제 교사도 해당되며 학교와 직접 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영양사 선생님’도 포함된다. 다만 방과 후 강사, 사립 어린이집과 학원은 적용대상 범위에서 제외된다.


Q2> '부정청탁'으로 인한 처벌은 어떤 경우인가?
담임교사
, 누리담임, 원장 등의 교사는 직무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대가성이 없더라도 직무관련자에게 학생 또는 학부모가 금품을 제공하면 준 사람과 받은 사람 모두 처벌을 받게 된다. 금액이 100만 원 이하면 과태료, 이상이면 형사처벌을 받으며, 과태료는 가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로 부과한다.

김영란법5조에 14가지 부정청탁의 유형이 있다. 학부모가 교사에게 지나가는 말로 성적을 올려달라고 하더라도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교사 역시 명확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한다.


Q3> 학교 현장체험학습에서 고생하시는 선생님께 김밥, 음료 등의 간식을 제공하고 싶다?
이제는 위법이다
. 학부모가 교사에게 제공하는 식사와 선물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사교, 의례 등의 목적을 벗어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


Q4> 담임선생님 상담이나 학교 행사에 가벼운 간식이나 음료수를 사가도 될까?
원활한 직무수행 범위 내에서 예외적으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 학생을 잘 봐달라든지, 성적이나 기타 관련 목적이 있다면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5만 원 미만도 부정청탁에 해당된다. ‘한 잔의 커피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Q5> 담임선생님 책상에 선물을 두고 오면?
불법이다
. 그러나 교사가 받았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 지체 없이 반환·인도하고 신고하면,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선물을 두고 온 학부모는 그 선물을 돌려받았더라도 물품 가액의 2~5배의 해당하는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Q6> 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교사에게 드리는 스승의 날 선물은?
작년 담임선생님의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무관련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선물을 드릴 수 있다
. 하지만, 성적, 수행평가 등 여전히 직무관련성이 있는 선생님이라면 학생은 물론 학부모가 드리는 선물 역시 부정청탁에 해당된다.


Q7> 담임선생님께 '이번 학기 끝나고 보답 드리겠습니다'라고 드리는 인사는?
불법이다
. ‘김영란법’은 금지된 금품 등을 수수하는 것뿐만 아니라 요구하거나 제공하기로 한 약속도 역시 부정청탁으로 규정한다.


Q8>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 부모가 따로 교사를 찾아가 가해자 엄벌을 요구하면?
부정청탁이 될 수 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와 같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요구하거나 단순한 확인·문의처럼 정당한 민원 제기에 해당하지 않으면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


Q9> 같은 반 학부모 10명이 담임선생님과 원활한 직무수행을 목적으로 식사하는데 비용이 ? 110만 원이 나왔다.(1인당 10만 원 기준) 이 때 학부모 10명이 각각 11만원씩 결제했다면?
2인 이상이 위반행위에 가담한 경우, 각자가 위반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하므로 학부모는 교사에게 제공한 금액인 10만 원의 2~5배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Q10>교사에게는 식사·선물·경조사비 기준 가액 3·5·10만원이 적용되지 않는 것인가?
식사
·선물·경조사비 기준 가액은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한 예외적인 범위에서 인정된다. 현재 자녀를 맡고 있는 교사와 학부모는 직무관련성이 있는 관계로 판단하기 때문에 3·5·10 조항에 적용되지 않는다.


스승의 날에는 그냥 자녀들이 선생님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도록

학부모님들은 신경 쓰지 않는게 맞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때론 어린 자녀들의 생각이 부모님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경우들이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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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 제623돌 세종대왕 탄신일 맞이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고찰


얼마 전까지 5월 15일 이었던 세종대왕 탄신일이 변경되었네요.

그런데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 아직도 5월 15일로 알고 있는 곳이 꽤 있는것 같습니다.


세종대왕 탄신일은 5월 15일에서 5월 7일로 변경되었다고 하네요.


그럼 세종대왕 탄신일로 맞춰졌었던 스승의 날도 변경되어야 되는것 아닌가요?




그런데 스승의 날은 변경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스승의 날이 5월 15일인 이유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스승이 세종대왕으로 생각하고 그 세종대왕의 생일에 맞춰져서 현재의 스승의 날이 5월 15일 이라고 합니다.


참고하세요.


한글은 참 훌륭하다고 이야기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뭐가 훌륭하지?

이렇게 훌륭한데 왜 글로벌 언어는 영어지?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우수한 것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것은 다르니 이것가지고 뭐라 할건 아닌것 같습니다.


한글의 우수함에 대해서 정말 잘 정리된 글이 있어 공유합니다.


발췌 : http://sgti.kehc.org/hangul/7.htm


한글의 우수성


전세계 언어학자치고 이제 한글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한글은 가장 과학적이고 편리한 문자임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한글은 과연 다른 문자와 비교하여 얼마나 우수한 문자일까, 위대한 문자일까?

첫째는 만들어진 기간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여지고 있는 문자는 로마자와 한자인데, 이것들은 각기 3천년 이상에 걸쳐서 만들어졌다. 지금도 한자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어쩌면 한자가 쓰이는 동안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불완전한 문자라는 말이다.

로마자가 불완전한 것도 두말할 필요 없다. 로마자 표기에 대해 우리 나라에서 유독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거의 완벽한 한글에 비해 로마자는 표현할 수 없는 음이 너무 많아서 어떤 수를 써도 한글로 쓴 것을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한글이 로마자보다 시원찮은 문자라면 오히려 한 번 정해진 로마자 표기에 모두들 감탄하기 바빠서 딴죽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자가 지닌 결정적인 약점은 모음이다. A, E, I, O, U 다섯 글자 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는 게 반자음인 W, Y이다. 그러니 한글로는 간단히 표시되는 `, , , ` 등은 원천적으로 표기 불가능하다. `, , ` 등도 불가능하다. 반면에 한글에는 모음이 무려 10개나 되는데다가 이를 응용하면 얼마든지 이중 모음을 더 만들어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 모음을 발견하기까지 무려 3천년이 걸렸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이를 불과 30년도 안 되어 완벽하게 창제하셨다. (세종 25년인 1443년에 창제 완료하고 세종 28년인 1446년에 반포함.)

로마자는 멀리 이집트로 그 기원이 올라간다. 아직도 이집트 글자를 상형문자로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아니다. 그것은 표음 문자이다. 이를 밝혀낸 사람이 바로 로제타 돌을 해독한 저 유명한 언어 천재, 16살에 대학 교수가 된 샹폴리옹(Champollion)이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가져온 로제타 지역의 괴상한 돌을 그 이전 사람은 모두 그림을 보고 추호도 의심없이 상형 문자로 알고 그 뜻을 읽어내려고 머리가 빠지고 벗겨지고 희어지도록 아둥바둥 애만 태웠다.

샹폴리옹은 그러나 그 아래 쓰인 그리스 문자에 힌트를 얻어 그것이 상형 문자가 아닌 표음 문자라는 과감한 가정을 하고 연구한 결과, 마침내 이를 다 해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 동그라미가 왕을 뜻한다든지 하여 약간의 표의 문자적 요소도 있긴 있었다. 문제는 이 이집트 문자가 너무 복잡했다는 데 있었다. 그 그림을 일일이 외워서 그린다는 건 보통 사람으로선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를 아주 간단히 바꾼 인종이 나왔다. 그가 바로 오늘날 중동 지역에서 나와 지중해를 휘어잡아 곳곳에 식민 도시를 건설한 페니키아인이다. 그들이 건설한 도시로 제일 유명한 게 바로 한니발의 카르타고이다.

이들 페니키아인들은 상업과 군사 중심의 인종이라서 복잡한 문자는 영 생리에 안 맞았다. 그래서 이를 대폭 간소화한 것이다. 거의 그림이라는 느낌이 안 드는 추상화한 문자를 만들었다. 이와 비슷한 것이 구약 성경을 기록한 셈족의 문자이다. 이것도 이집트 문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두 문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음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하다가 현재는 야훼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하나님 이름을 입으로 감히 발음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 발음을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여호와나 야훼나 문자 상으로는 똑같다. 로마자로 표기하면 둘 다 `YHWH`이다. 사실 음운 현상에서 모음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이 변하지만 자음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대로 사람들은 이런 문자를 큰 불편함 없이 쓸 수 있었다. 대신에 그 발음을 정확히 하려면 굉장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보통 머리로는 거의 불가능했다.

모음을 발명하고 또 글자 모양도 더욱 간단하고 아름답게 만든 인종이 바로 저 유명한 그리스인이다. 이들 때문에 비로소 문자가 소리나는 대로 기록할 수 있었고 보통 사람도 누구나 약간의 교육을 받으면 바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이건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다. 말은 어차피 누구나 아는 일이고 이제 이를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자 익히는 데 허비하는 시간 대신 생각하는 시간에 투자함으로써 인류의 지식과 지혜가 폭발적으로 늘어 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남한 정도 되는 그리스가 그 후 얼마나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는지는 삼척 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 원동력은 바로 자음에 이은 모음의 발명이었다.

이것은 후에 아라비아 문자가 발명됨으로써 수학적 지식에 날개를 달아 주었던 것과 유사한 엄청난 일이었다. 여담이지만, 그리스에서 나온 영어 단어 rational(합리적인)은 원래 구구단을 욀 수 있는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그만큼 문자로 기록한 구구단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외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라비아 숫자로 기록해 버리면 천치 아닌 한 누구나 몇 대 회초리만 맞으면 초등학교 2학년이라도 외울 수 있다.

그리스인은 이 모음을 발명한 게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알파벳의 제일 첫 자와 끝 자를 모음으로 장식했다. 그게 바로 알파(A)와 오메가(Ω)이다. 각각 ``, ` ` 발음이다. 알파벳이란 말도 첫 두 자, 곧 모음 하나와 자음 하나를 일컫는다. 로마자로 말하면 에이비(AB)나 마찬가지이다. 알파베타(Alphabeta)라고 하던 것을 나중에 영어에서 알파벳(Alphabet)이라고 한 것이다.

표음 문자는 크게 셋으로 구분되는데, 페니키아문자 같은 자음만으로 된 것, 일본의 가나와 같은 자음과 모음을 함께 발음하는 음절 문자, 로마자나 한글 같이 자음과 모음으로 나누어 있는 알파벳(음소 문자)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음소 문자가 가장 발달한 것임을 두말할 필요 없다. 만약 음절 문자로 표현하게 되면 우리 나라같이 음이 다양한 말은 최소한 3천 자가 필요하다.

이렇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소리를 자음과 모음으로 구별하여 적는 데, 인류는 무려 3천년이 걸렸던 것이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세종 즉위 후 바로 시작했다고 해도 불과 25년만에 그리스 문자를 압도하는 완벽한 문자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 건 세종대왕 혼자가 아니라 집현전 학사 모두가 오로지 이 일에만 매달렸다고 해도 경천동지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의 창의력이 세계에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한글 창제는 요새 식으로 계량화하면 노벨상 100개에 해당하는 위대한 업적이라고 본다.

한글의 위대성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몇 개만 더 들자.  둘째, 소리와 발음 기관의 완벽한 연관성이다. 로마자는 소리와 문자는 전혀 별개이다. 그냥 약속일 뿐이다. 이집트에서 예를 들면 ``할 때 `` 소리가 나니까 ``를 그려 놓고 이를 ``이라고 하자라는 식이었다. 이것이 말이 다른 페니키아, 그리스로, 로마로 가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약속일 뿐이다.

그런데 1940년 안동의 희방사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됨으로써 한글은 발음 기관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것이 비로소 밝혀졌다. 이것은 세계 언어학자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서양에서 음성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겨우 [d, t], [b, p], [s, z], [v, f], [g, k] 등을 짝지어 유성음 무성음을 구별해 놓고 득의만면하고 있었는데, 15세기초에 벌써 이런 것을 완벽하게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g, k]를 혀가 입 천장에 닿는 모양을 본떠서 아예 글자 모양과 비슷하게 [, ] 더 나아가 된소리까지 표현하여 [, , ]까지 만들었던 것이다. [, , , ]에서 보듯이 기본자 [, , , ]에서 격음일 경우에 힘이 더 드는 걸 감안하여 줄을 한 두 개 더 그었던 것이다.

이 원리를 응용하여 한글을 가르치면(이런 교재가 빨리 나오기 바란다. 마음만 먹으면 아주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일주일 이내에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한글은 정말 배우기 쉽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머리가 굳어질 대로 굳어진 어떤 외국인에게도 금방 가르칠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다가 새로운 것을 연관시키면 아주 쉽게 배우고 잊어 버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모음은 더욱 경이롭다. 천지인과 발음 기관을 같이 본떴다. 하늘은 둥그니까 간단히 아래 아 [·], 땅은 평평하니까 [], 사람은 서 있으니까, [], 세상에 이보다 더 간단할 수가 없다. 실지로 발음을 해 보면 전세계의 모든 발음이 [·]할 때는 입이 둥글게 크게 벌어진다. []는 입이 옆으로 벌어지면서 혀가 평평해진다. []는 혀가 앞으로 내밀어지면서 세워진다.

여기서 각각 [, ] [, ], [, ] [, ] 등이 나오는데, 물론 처음에는 [, ]에 앞 뒤 또는 위 아래에 `아래 아`자를 덧보탠 것이었다. 이것도 경이로운 것이 세계 모든 발음이 [] 발음을 할 때는 반드시 숨을 내쉬게 되어 있고, []할 때는 숨을 들이쉬게 되어 있다. 그래서 각각 밖과 안에 ``을 찍은 것이다. [, ]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는데, []는 반드시 아래로 내리쉬고, []는 아래에서 위로 치받치게 되어 있다.

놀라운 일은 하나 더 있다. 한글은 누가 보아도 자음과 모음을 구별할 수 있다. ? 모음은 반드시 가운데, 또는 오른쪽에 있기 때문이다. 로마자는 풀어쓰기 때문에 척 보고 자음과 모음을 구별할 수가 없다. 한글은 소리나는 단위가 음절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그대로 활용하여 한 자 한 자에 자모를 붙여 놓아 소리 단위를 금방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로마자는 어지간한 전문가가 아니면 음절 구분을 못한다. 한글은 바보라도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한글을 아는 사람은 바보라도 로마자 아는 천재와 같은 급이 된다는 말이다. 음소 문자이면서 음절 문자의 장점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컴퓨터가 나오면서 다시 위력을 떨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아직 한글에서 뒤지는 이유는 바로 한글의 24자가 하나의 디지털로서 무한한 조합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완성형을 택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찬진의 한글은 조합형을 택했던 것이다. 역시 똑똑한 조상 덕에 간단히 미국의 천재를 바보로 만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완성형을 표준으로 삼은 일은 정말 개탄스런 일이다. 디지털이란 것도 기껏해야 [0][1]이라는 두 문자를 이용한 이진법을 무한히 연결하는 것인데, 한글은 그 자체가 무한히 응용할 수 있는 24개의 디지털 기호이다. 지금은 겨우 워드 프로세서에 응용하는 정도이지만, 이를 잘 응용하면 엄청나게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세계를 휘어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이 이렇게 자음과 모음을 확실히 구별하면서도 음절 단위로 쓰게 됨으로써 정보화 시대에 또 하나의 경이적인 장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공병우식 자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원리는 바로 과학적인 한글의 장점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현재 널리 보급된 것과는 달리 왼손은 초성을 치고 오른손은 중성과 종성을 동시에 치는 원리이다. 한 글자를 한 번에 치는 방식이다. 그러면 아무리 손가락이 굳은 사람도 1분에 쉽게 3백 타 이상을 친다. 무려 1분에 1300, 1400타까지 가능하다.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쓸 수 있다.

속기사는 전부 공병우식을 쓰고 있다. 속도가 생명인 정보화 시대에 이것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리석은 위정자 때문에 공병우씨가 그렇게 평생을 애썼는데도 일반에게 보급되지 않았다. 2년 전인가 삼성에서 공병우식 자판을 만든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현재 방식으로는 아무리 빨라야 7백 타, 8백 타가 한계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세종대왕은 한국의 바보도 외국의 천재와 비슷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는데, 서양 바보들에게 배워서 도리어 바보가 된 위정자가 서양 흉내내느라고 우리 좋은 것을 다 버렸으니 말이다.

한글의 위대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다. 그것은 바로 표음 문자이면서 표의 문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글 전용을 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한글의 이 장점 때문이다. 그 이유는 한글은 음절 단위로 쓰기 때문에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음절 문자의 장점을 가질 뿐만 아니라, 어원을 밝혀 적을 수 있어서 표의 문자 구실도 제법 훌륭히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우리말과 한자말로 구별해서 설명하기로 하자.

우리말 -- 훈민정음 해례에서 종성부용초성법을 택해서 가능한 일이었는데, 조선 중기의 8종성법에서 한글학회에서 이를 다시 살린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나뭇잎`-이것을 소리나는 대로 `나문닙`이라고 적는다고 해 보자. 그러면 도대체 말로 할 때와는 달리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어원을 밝혀 `나무`에다가 관형격 조사 ``에 해당하는 사이시옷 `` 거기다가 주둥아리 입이 아니라 받침에 ``을 써서 ``이라고 함으로써 척 보면 이것이 나무에 달린 잎이구나라고 알게 된다. 어원을 밝히기는 매우 어려운 일인데, 한글을 배우면 웬만한 것은 초등학생도 다 안다.

`이것을`-이것을 소리나는 대로 `이거슬`로 적는다고 해 보자.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이것을``이것```을 합한 것임을 아주 간단히 나타낸다. 뜻이 금방 머리가 들어오게 되어 있다. `있다`-이것을 `이따`라고 적는다고 해 보자. 이것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일어난다. 한글의 이런 장점은 뜻글자인 한자도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음성을 나타내되, 시각적인 효과로 뜻글자 구실도 훌륭히 해 내는 것이다.

한자말 -- 이것도 아주 잘 나타낸다. `천리만리`-이것을 `철리말리`라고 쓴다고 해 보자. 그러면 말할 때와는 달리 도대체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가 머리가 아주 비상한 사람 외에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천리만리`라고 쓰면 초등학생도 `천 명, 만 명`, `천 개 만 개` `천 원 만 원``, `이란 걸 알 수 있다. 선생님은 이런 걸 좀 가르쳐 주어야 한다. 한자까지 가르쳐 주면 더 좋지만, 그에 앞서 바보 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이런 걸 가르쳐 주면 설령 한자를 모른다고 해도 말뜻을 아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고 바보 학생도 천재가 되어 새로운 말을 척척 만들어낼 수 있다.대신 천재, 천사, 천국, 천치, 천성 등의 ```하늘, 타고난`의 뜻이 있다는 것도 꼭 알려 주어야 한다.

물론 한자를 곁들이면 더욱 좋고. 그러나 이를 꼭 한자를 병기해서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정도만 가르쳐 주면 아주 정확한 언어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머리가 어느 정도 되는 학생들은 한자를, 한문을 꼭 가르쳐서 조상들이 한문으로 남긴 엄청난 정신적 유산을 계승하여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울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한글은 바보를 보통 사람으로 보통 사람을 천재로 만드는 경이의 문자이다. 한글의 장점은 연구하면 할수록 계속 쏟아져 나올 게 틀림없다. 널리 알려진 것은 이 글에서 생략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한글은 누가 만들었을까.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나는 세종대왕이라고 본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이런 경이적인 창작품은 절대 여러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천재의 머리에서 나온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위대하다고 수천 명의 머리를 합해서 나온 게 아니다. 상대성 원리가 신의 영역을 건드린 발견이라고 해서 일류 과학자 만 명의 머리를 합해서 나온 게 아니다. 고독하게 한 천재가 각각 발견한 것이다. 이런 것은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방해가 된다.

둘째, 세종대왕은 두 가지만 스스로 했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훈민정음 창제와 작곡이다. 나머지는 누가 했는지, 그 본인의 이름이 거의 다 밝혀져 있다. 만약 세종대왕이 왕의 신분을 이용해서 자기 공으로 만들 생각이 있었다면, 이런 것도 대부분 `어제(御製)`란 말을 붙였을 것이다. 세종실록에 보면 매우 겸손했던 세종대왕이 음운학에 대해서만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말도 아주 직설적이었다. "너희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과 칠음에 자모가 몇 개 있느냐? 만약에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누가 바로잡겠느냐?" "너희가 (이두를 정리한) 설총만 옳게 여기고 임금의 일은 그르게 여기니 어찌된 일이냐?"

셋째, 당시 학자들은 오로지 유학이었다. 집현전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요새 식으로 말하면 이런 따위의 음성학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연구하는 걸 수치로 여겼다. 그런 상황에서 설령 연구에 일부 참여했다고 해도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한문 숭배가 종교의 수준까지 이르렀던 때이다. 실지로 신숙주, 성삼문이 만주로 음운학자 황찬을 만나러 가는 것은 한글 창제 이후의 일이다. 이들은 완벽을 기하려는 세종대왕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황찬에게는 무슨 훈민정음에 대해 자문을 구하려는 게 아니었고 동국정운을 정확히 만들기 위해 중국 음운에 대해 물어봤던 것이다. 세종대왕은 왕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훈민정음을 거의 혼자 발명하신 듯하다. 설령 직접 창제하지 않으셨다고 해도 관계없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훈민정음은, 한글은 결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니까.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것도 못난 위정자들 탓이라고 본다. 모든 공휴일을 다 폐지해도 한글날은 공휴일로 지정해야 할 것이다. 바보를 보통 사람으로 만들고 보통 사람을 천재로 만들어 주는 한글을 기리는 날을 공휴일로 안하고 도대체 무엇을 공휴일로 한단 말인가. 열심히만 일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한글 창제하는 것처럼 창의적으로 머리를 쓰면 열흘 놀고 하루 일해도 능히 선진국을 앞설 수 있는 법이다.



사실 발췌본 맨 끝에 있는 국가기념일 관련해서도 한글날은 꼭 다시 휴일로 지정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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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전쟁과 가난으로 피폐해진 대한민국을 국가주도의 ‘산업화’를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 경제를 부강을 이뤄낸 대통령, 인권 탄압, 노동 운동 및 야당 탄압, 군사유혈독재와 부정축재, 친일반민족행위 논란 등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 했다는 대통령


아직도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되고 있는 대통령이다.


물론 그에 딸은 국론분열 및 최순실의 허수아비, 비선실세를 통한 무능함만 뒤 따르지만...


1961년 5월 15일은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날이다.


군사정변 또는 쿠데타란



5·16 군사 정변(5·16 軍事 政變)은 1961년 5월 15일 저녁부터 1961년 5월 18일 정오 무렵까지 서울, 부산, 대전, 광주, 김포, 부평, 수색, 포천 등에서 임시적 군정 실시를 목적으로 일어난 쿠데타를 말한다. 주동자는 서울을 관할하는 제6관구의 전 사령관이었던 박정희로 밝혀졌으며 십수명의 유능한 장성 및 수십명의 핵심 영관급 장교들과의 사전 모의를 통하여 군정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사전에 참여 병력으로는 김포 공수단 1000여 명, 해병 제1여단 1300여 명, 6관구 사령부 소속 병력 1700여 명,[1]제6군단 포병단 5개 대대 3000여 명과 제5사단(사단장 채명신 준장이 이끌고 서울 진주), 제12사단(사단장 박춘신 준장과 부사단장 및 작전참모가 이끌고 춘천 진주), 제30사단(부사단장, 작전참모, 헌병부장이 사단 이끌고 서울 진주), 제33사단(작전참모, 연대장 등이 이끌고 서울 진주), 그리고 2군을 비롯한 지방에 있던 여러 장교들까지 수만 명에 이르렀다.


자세한 사항은 여기  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박정희 그에 이름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군관시절 개명을 하였으며, 만주군관확교 및 일본육사 졸업식에도 같은 이름을 사용 하였습니다.

또하나의 일본이름이 있는데 다카키마사오에 조선인 냄새가 난다고 하여 다시 작명을 합니다. 그 이름은 "오카모토 미토루"라는 이름입니다.

참 대단하죠?


위에서 말 했다시피 박정희의 친일 행적은 쉽게 찾아 볼수 있습니다.


박정희의 친일 행정


사실 해방이 된 뒤로 친일파만 제대로 제거 했어도 이런 인물이 나오지는 않았을 건데....

과거를 제대로 지우지 못해 아직까지도 친일 인물들이 떵떵거리고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있으니, 참 개탄 스러울 따름입니다.


박정희는 1961년 5월 16일 쿠데타 19개월 후 박정희, 권력 정점에 올라 제 5~9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재임기간은 1963.12 ~ 1979.10월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으며,


대통령 수행기간에 헌법의 개정을 통해서 일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박정희가 99.9% 득표율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


대통령을 지내다가 김재규에 의해서 피살되고 나서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박정희는 대통령 재임기간중에도 여성 편력이 심했다고 하는데 아래 영상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은 한국의 근대사..


물론 명과 암이 존재하는 세상이지만......


이 말을 한번 더 되 새기며, 다시는 박정희, 이명박, 박근혜 같은 대통령이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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