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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성 지진 현장]


2008년년 5월 12일 오후 2시 28분 중국 스촨성 지방에서 리이터 규모 8.0의 대 지진이 발생한다.

이 지진으로 사망자만 약 69,000명, 부상자 약 374,000명, 행방불명자 18,000명, 재산 피해자 약 4,616만명의 피해가 발생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약 한개의 군을 이루는 지역의 사람들이 사망했으며, 전체의 95%정도가 재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자연 재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먼저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이 지진으로 도시전체가 마비되었으며 한국의 소방대원들도 그 지역에 지원을 갔습니다.


이런것을 보면 인간은 정말 작은 존재 같다고 생각됩니다.

일본, 중국 이런데서 지진이나 해일이 발생하면 인간은 속수 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데요.


요즘은 과학이 발전해서 먼저 해일이나 지진경보를 줄 수 있지만 그래도 피해를 어느정도 줄이는 수준이지 완전한 대비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럼 재난안전청에서 보내는 문제메시지나 뉴스 말고는 어떤것들이 이러한 재해를 먼저 알려 줄 수 있는지 한번 알아 보겠습니다.


이것들은 100%정확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것들이 생기면 조심해서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여 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비둘기의 갑작스러운 이동



쓰촨성 지진전에 두꺼비의 대규모 이동



조류, 양서류, 포유류 할것 없이 지진 전에는 갑작스러운 대 이동을 한다.



지진운이라고 불리우는 구름

우리나라에서 많이 관찰되었으나 지진으로 연결된 경우는 없음




무지개 구름 - 특기 세로로 나타나는 무지개 구름은 전조현상이라는 말이 있음.


이렇게 해서 지진에 대한 전조현상을 알아 봤는데요. 그 외에도


개미떼의 이동

심해어의 발견

가스냄새


등도 전조현상이라고 합니다.


정확하게 맞을 수는 없지만 한국도 지진안전지대가 아닌만큼 항상 조심해서 생활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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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전범 아돌프 히틀러



1945년 5월 8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나치 독일의 무조건 항목에 허가하고 아돌프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멸망한 날입니다.



[항복 문서]


나치독일의 패배 행사는 유럽 및 북아메리카에서 거행 되었습니다.


본래 독일 군사항복은 5월 8일에 독일 동쪽에서 진행되었지만 소련은 모스크바 시간을 5월9일을 승전 기념일로 하였습니다.




2차세계대전 종전 후 나라별 군사 위치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동유럽은 소련군이 서유럽은 미국군이 주둔 하면서 항복 선언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래서 사진 오른쪽은 공산주의화 되었으며, 왼쪽은 민주주의화 되었습니다.


체코는 5월 8일이 승리의날 또는 해방의 날이라고 하여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얼마 전까지 한 나라였던 슬로바키아도 같은날이 휴일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8월 15일 광복절과 같은 날이라고 보면 될것 같습니다.




그런데 폴란드는 독립기념일이 따로 있습니다.

폴란드는 유럽의 대한민국이라고 불리울 만큼 많은 침략을 받았습니다.


소련, 독일, 오스트리아로 부터 분할 통치된지 123년 후인 1918년 11월 11일 국가로서의 지휘를 회복한 날로 이날이 독립기념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얼마 후인 5월 8일 유럽 전승기념일(Victory in Europe Day)에 대해서 알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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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저기 웹 문서를 보다보니 파리 에펠탑 개관이 1889년 3월 31일 인것을 확인 했습니다.


벌써 130년 하고도 1년이 넘었네요.


설마 오래됐다고 재개발을 하지는 않겠죠.


저도 가족과함께 애펠탑에 한번 갔었습니다.

입장료도 비싸고 매표소 대기줄이 너무 길어서 입장은 못해 봤습니다.


대신 밖에서 사진만 열심히 찍고 왔습니다.


에펠탑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드릴게요.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한 세계 박람회인 "1889년 만국 박람회" 입구로 건축되었습니다.


공학자이자 건축가인 귀스타브 에펠의 이름을 따서 "에펠탑"으로 명명하였습니다.


에펠탑은

300명의 작업자가 1887년부터 1889년까지 3년에 걸쳐 건축하였으며, 18,038조각을 50만개의 리벳으로 조립하였는데요, 그 당시 기술이 발전하지 않아서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을 것으로 예상하는데 실질적으로는 단 한명만이 공사중 사망 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때 당시의 한국은 청나라에 영신사, 일본에 시사유람단을 파견하던 시대였으며, 개화파는 갑신 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로 돌아가면서 조선역사상 유래없이 청나라에게 사실상 반 식민지 수준의 간섭을 받았던 시대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래도 그때는 유럽이 동양보다는 훨씬 발전 했었다는 것이 느껴지네요.


에펠탑에 관련되어

1889년 9월 10일 토머스 에디슨이 탑을 방문하고 난 후 모든 기술자와 용감한 석사에펠에게 경의감을 표현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에펠탑을 알아봤구요.

제가 에펠탑을 방문 했을때는


2018년 11월 정도였으며 약간 쌀쌀한 날씨 였던것으로 기억합니다.


파리 방문관련은 유럽여행 포스팅에서 자세하게 설명 드릴게요.


하늘과 너무 잘 어울리는 에펠탑


[에펠탑 밑에서 바라본 정경]


[너무 높아서 한장에 담기 어려워요]


여기가 가장 잘 보이는 장소




여기가면 한국말 하는 상인을 볼 수 있는데요..


기념품을 팔고 있습니다


에펠탑을 들고다니면서


 "빤짝빤짝 오유료"


이렇게 말하는 노점상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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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구 선생님과 윤봉길 의사]


1932년 4월 29일은 오전 9시 30분 부터 군사퍼레이드를 시작으로 일제 승전기념식 행사가 훙커우 공원에서 있었습니다.

11시 30분경 상하이를 침략한 일본 장군들과 대표가 올라와 "기미가요"를 부르는 순간

굉음과 함께 폭탄이 터졌습니다.


[윤봉길 의사]


윤봉길 의사의 이 의거로 일본 총사령관 및 단장등 많은 일본군들이 죽거나 다치고 후휴증으로 죽었습니다.


이 의거로 1932년 4월 29일, 오후 1시경에 전 세계에 뉴스로 보도되기 시작하여, 전 세계 각국 주요 신문들이 제1 면에 대대적으로 이를 보도하면서 세계을 깜짝 놀라게 했다.

처음 보도되었을 당시에는 대부분 중국인이 일으킨 항일투쟁 내지는 일본인 혁명주의자 활동으로 인식되었으나 이튿날에 한국청년 윤봉길의 항일 독립운동이 밝혀지고 보도되었다.

이 의거로, 만보산 사건으로 인해 나빠진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어 중국 영토 안에서 한국 독립운동의 여건이 좋아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또한, 당시 국민당 총통이었던 장제스는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에서의 폭탄 투척 소식을 전해 듣고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니 정말 대단하다."

라며 감탄하였다. 이 일은 장제스가 조선에 관심을 갖고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정말 대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포스팅 합니다.


윤봉길 의사는 대한민국 예산군 덕산면에서 1908년 6월 21일에 태어났습니다.


1918년 덕산보통학교를 입학하였으나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자극 받은 윤봉길의사는 식민지 노예교육을 배격하며 학교를 자퇴하였습니다.


청년시절 농민 운동이 관심이 많았으며 여러가지 책을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1930년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아래의 글귀를 남기고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1931년 김구선생님을 찾아가 독립운동에 온몸을 바칠 각오를 하고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한인애국단 선서문]


[한인애국단 사진]


김구 선생님은 일본군 열병식에 폭탄을 투하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윤봉길 의사와 함께 거사를 계획한다.


4월 29일 아침식사를 마치고 의거를 위해 홍커우 공원으로 향합니다.

홍커우 공원에 도착한 윤봉길 의사는 11시 30분경 일본 헌병 경계선을 뚫고 단상 5M 전방까지 도착하여 정확하게 폭탄들 던집니다.

의거가 끝난후 윤봉길 의사는 현장에서 검거되어 모진 고문을 받다 돌아가십니다.


이 의거로


시라카와 요시노리 - 총 사령관(12번 다리 수술 후 사망)

가와바타 사타쓰구 - 폭탄을 맞아 창자가 끊어져 사망

시게미쓰 마모루 - 오른쪽 다리 부러져 평생 절름발이

무라이 - 폭탄맞고 중상

노무라 기치사부로 - 오늘쪽 눈 실명

후에다 켄키치 - 다리 절단

토모노 - 폭탄 맞고 중상


정말 대단합니다.


욘봉길 의사는 이 의거로 사형을 선고 받고 1932년 12월 19일 사형을 당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데로 독립운동의 기초가 되었으며,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4월 29일은 대한민국에 가장 용감한 역사를 가지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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